에리히 프로의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로의 소유냐 존재냐

p37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가 입각해 잇는 심리학적인 전제들로 인해서 ...

첫째로 인생의 목적은 인간들의 모든 주관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것, 달리 말해서 행복을 최대한의 쾌락을 누리는 것과 동일시하는 철저한 쾌락주의이며,

둘재로는 자기중심주의, 이기심 내지 탐욕이 이 체제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조장될 필요가 있다는 전제이다.

흔히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만 해도 그가 말하는 쾌락은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와 영혼의 평정을 의미했다.

쾌락에는 반드시 불쾌감이 뒤따르며, 진정한 목적인 고통의 부재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p53

사랑에 '존경'이 결여되이 있을 경우,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한다.

p80

이미 상대방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즉 하나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사랑스러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거나 사랑을 연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권태를 느끼게 되며 옛날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즉 돈, 사회적 지위, 가정, 자식의 공동소유로 만족한다. 두 개의 자기 중심주의를 하나의 합동자본으로 삼은 회사, 즉 '가정'이라는 회사인 것이다.

p87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보다도 자기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존재란 우리의 실재이며 우리를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저신 상태이자 성격이다.

p108

목적을 달성했을 때 그들은 강렬한 만족을 느끼며 절정에 달했다고 느낀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한 것은 그들의 정열이다.

정열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조건의 타당한 해결을 가져오지 않는 병적인 것이다. 그러한 정열은 보다 큰 성장과 힘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쾌락들은 순간적인 흥분을 가져오지만 기쁨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기쁨의 결여 때문에 항상 새롭고 한층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쾨락과 스릴은 절정에 이른 뒤에 슬픔을 가져온다. 스릴을 느낀 사람은 아무런 성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 전의 텅빈 내면으로 되돌아 가기 때문이다.

섹스의 기쁨은 육체적 접촉이 동시에 사랑의 접촉일 때에야 비로소 경험되는 것이다.

p113

죽음에 대한 공포란 사실은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 데 대한 공포이다.

금욕적인 사람은 소비를 억제하려고 하는데 그는 사실은 소비에 집착 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과잉보상(어떤 약점을 숨기기 위해서 그 반대의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의한 자기부정은 정신분석의 데이터에서 매우 자주 보인다. "